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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를 돕는 심리 용어들

퀴블러 로스의 <상실의 다섯 단계 - 부정, 분노, 절망, 타협, 수용>

퀴블러 로스는 사람이 상실을 겪게 될 때 보이는 반응을 다섯 단계로 정리한 것이 우리에게 많은 도움을 줍니다. 누군가의 수고로 우리는 지도를 얻은 것이죠. 

 

 

말 그대로 지도이기 때문에 상실이라는 곳에 놓이게 된 사람에 따라, 그리고 상황에 따라 그 경험에는 차이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여행을 가도 날씨에 따라, 계절에 따라, 그때의 나의 기분과 감정, 상태에 따라 보고, 듣고, 접하게 되는 것이 다른 것처럼요. 

 

 

그래도 이 다섯 단계는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그 상실 속에서 살아가야 하는 분들에게 조금의 도움이 될 것입니다. 제 경험으로는 상실을 겪고 살아가고 있는 분들보다 그의 곁에 있는 분들에게 더 도움이 될 것입니다. 상실을 겪게 되면 어떤 모습의 과정을 보내게 되는지를 알려주기 때문이죠. 

 

 

마음만 잘해주고자 하는 것이 아닌, 상대에 대한 이해를 갖고 곁에 있어주는 것은 실질적인 도움을 주는 것이 될 것입니다. 

 

 

unsplash

 

 

상실을 겪게 되면 보이게 되는 다섯 가지의 반응

 

상실을 겪게 되면 다음과 같은 반응을 보이기 쉽다고 합니다. 하지만 단계적으로, 1단계, 2단계, 이렇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부정, 분노, 절망, 타협, 수용>

 

각 단계는 순서대로 지나가는 것도, 꼭 거쳐서 가는 정거장 같은 것도 아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보이게 되는 모습들에 대해 이해할 수 있게 도와줍니다. 그로 인해 상실을 겪게 될 때, 그리고 상실의 상황을 겪게 된 사람에게 도움이 되어주고 싶을 때, 보다 잘 대처해줄 수 있습니다. 

 

 

특히, 부정과 분노, 그리고 절망의 모습을 보일 때, 논쟁을 하거나, 논박을 하는 안타까운 반응과 같은 것을 하지 않을 수 있게 해주는 이해를 갖게 되는 것이 가장 큰 도움일 것입니다. 

 

 

부디, 상실을 겪고 부정과 분노, 그리고 절망의 상태에 있는 사람에게 옳고 그름, 사실과 현실을 늘어놓고 가르치러 들지 마세요. 그냥 그가 상실의 시간과 상황을 잘 지나갈 수 있게 그의 곁에 있어주세요. 필요한 도움을 주면서요. 

 

 

그럼 우선, <부정>의 단계를 살펴볼게요.

 

<부정>

일어난 일에 충격을 받아 망연자실한 모습을 보입니다. 일어난 일의 비현실성 때문에 '이건 꿈일 거야'란 말만 나오게 되죠. 상실의 상태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게 만들죠. 받아들여야 그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가 있는데, 일어난 일을 부정하니 다음 단계로 나아가지를 못하게 됩니다. 

 

 

회피와 위축, 두려움이 공존하게 됩니다. 소중한 사람의 상실로 인해 사는 것이 무의미하게 느껴져 삶의 무의미함을 견뎌내기 힘들어 합니다. 그래서 부정의 시간이 오래 가면 점점 정신이 둔해지고 무감각해지게 됩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삶은상상이나 바람 위가 아닌, 현실 위에 있어야 하기 때문이죠. 

 

 

하지만 이런 반응을 보인다 하더라도 기다려주세요. 지금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슬픔과 충격을 감당하기 버거운 것입니다. 부정을 하면서 스스로를 보호하고 있는 것입니다. 현실은 그로 하여금 상실의 현실을 직면하게 만듭니다. 그러니 현실을 직면하게 하려고 하기보다 일어난 일을 부정하는 것 자체를 하나의 과정이고 하나의 모습이라는 이해를 갖고 받아주고 기다려주세요.

 

<분노>

부정하면서 받아들이지 않고 있던 그가 일어난 현실과 상황을 받아들이게 되면, 보이게 되는 반응이 분노하는 모습입니다. "어떻게 이럴 수 있어!?"라며 분노의 감정이 상황에 향할 수도 있고, "너 때문이야!", "당신이 뭘 안다고 그런 말을 해!"라고 누군가를 원망하고 탓하듯 분노의 감정이 향할 수 있으며, "내가 나를 용서하지 못하겠어."라고 자기 자신에게 분노의 감정이 향할 수도 있습니다. 

 

 

일어난 일에 대해서도 분노하게 되고, 이 세상에 혼자 남겨지게 된 것에 대해서도 분노하게 되며, 삶의 불공평함에 분노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삶은 불공평해요. 어쩌겠어요. 원래 불공평한 것을요. 하지만 이 말은 그러니 분노하지 말라는 것이 아닙니다. 

 

 

분노는 치유과정의 필수 단계이기도 합니다. 분노하는 것을 지적하고 비난하지 말아야 합니다. 분노하는 심정을 이해해주고 받아주고 보호해주어야 합니다. 그냥 분노 그대로 분출하고 표출할 수 있게 온전히 받아주세요. 삶도, 죽음도 불공평합니다. 불공평한 상실 앞에서 분노하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분노의 모습만 갖고 판단하고 지적하면 안 됩니다. 

 

 

분노하는 자신이 너무 크게 다치지 않게만 잡아주고 보호해주세요. 주지화를 시켜서 괜찮은 척 자신의 감정을 숨기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건강한 것입니다. 그러니 부디 상실로 인해 분노를 분출하는 사람을 가능한 비난에 노출되지 않게, 스스로 자책하지 않게 보호해주세요.

 

 

<절망>

'이제 내 삶은 끝이야.', '살 의미가 사라져버렸어.' 이 두 반응 만큼 절망의 모습을 보여주는 반응도 없을 것입니다. 삶의 끝은 우리가 결정짓는 것이 아니며, 사는 것은 의미를 갖고 사는 것 또한 아닙니다. 살아가는 모습과 과정에서 의미가 생겨지고 그것이 누군가에게 의미 있는 영향을 주게 되죠. 하지만 그의 말에 논쟁하고 논박하지는 말아주세요. 그냥 받아주고 감싸주세요.

 

 

절망 또한 상실을 겪게 된 사람이 보이게 되는 과정 중 하나입니다. 그러니 너무 당황하거나 하나하나 반박하고 빨리 끄집어내주려고 애쓰지 않으셔도 되세요. 시간과 과정이 필요한 것입니다. 상실을 겪게 되면 절망의 상태에 잠기게 되는 것은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모습입니다. 어떻게 절망하지 않을 수 있겠어요? 

 

 

'내가 왜 살아야 하지?'라는 생각은 잠시 접어두기로 하는 것이 필요하죠. 그 대답은 3개월의 시간을 보내고 나서 하기로 하는 것이 좋습니다. 무기력과 절망, 우울 등을 병으로 생각하고 너무 염려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자연스러운 과정으로 봐야 합니다. 

 

 

물론 감기도 열이 고열로 나면 해열제와 진통제를 먹듯, 무기력과 절망, 우울감이 너무 심하다면 안정제나 우울증 약이 도움은 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냥 견디어내는 것을 저는 권해드리고 싶습니다. 우리는 순수한 애도로 절망감의 시간도 받아들여줄 필요가 있습니다. 슬퍼하지 마라, 절망하지 마라, 약해지지 마라, 또는 그런 식으로 슬퍼하지 말고, 절망하지 말고, 약해지지 말라고 말하는 것만큼 마음에 병을 갖게 만드는 것은 없습니다. 

 

 

그저 곁에 있어주세요. 절망의 상태에 있다 하더라도요. 

 

 

<타협과 수용>

나머지 타협과 수용에서 핵심을 잡아서 이야기를 드리면, 우선 타협은 성숙된 모습이 아닌 경우가 대부분일 것입니다. 왔다갔다 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그냥 그 모습 그대로 받아주세요. 초라함을 느끼지 않게 잘 보듬어주세요. 타협의 모습 역시 상실을 겪은 사람이 통과해 가야하는 모습 중 하나라고 이해해주세요.

 

 

일어난 일을 수용하는 모습에 있어서 놓치지 말아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수용의 의미를 일어난 일에 대해 괜찮다고 여기는 것으로 오해하는 경우이죠. 괜찮지 않습니다. 지금 상실을 겪은 사람은 일어난 일에 대해 괜찮다고 하는 것이 수용이 아닙니다. 

 

 

괜찮지 않은 현실을 받아들이고 인정해서 그런 상태 위에 새로운 삶과 현실을 써내려가는 것이 상실에 대한 수용의 모습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상실의 모습에서 말하는 수용은 '아련함'을 품고 있습니다. 

 

 

 

 

 

상실을 겪은 사람에게 사려 깊게 대해주려면,

이틀의 시간이 흘러도 이틀 전에 접했던 소식은 저의 마음을 여전히 무겁고 슬프게 만드네요. 원래 올해 마지막 날에 올려드리려고 준비했던 글은 내려놓고 '슬픔과 슬퍼함'에 관해 담담하게 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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