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도 괜찮다고 생각하면 괜찮아진다고 생각하나요?
그건 케이스 바이 케이스입니다. 괜찮다고 생각하면서 있는 것이 좋을 때가 있고, 그러는 것이 안 좋을 때가 있죠.
그런데 문제는 여기에서 발생합니다. 그냥 모든 것에 '괜찮아'라고 생각하며 괜찮음을 스스로에게 주입시키고, 최면을 걸고, 자기 암시를 하며 마치 '괜찮아 믿음교'에 빠진 사람인양 믿음으로 있는 분들이죠.
<골때리는 그녀들>에 에이스로 손 꼽히는 분으로 정혜인 씨가 있습니다. 축구를 잘하시죠. 그런데 상대팀에게 여러 골을 먹고 끌려가고 있을 때, 다른 팀원들이 서로에게 언제나처럼 습관처럼 "괜찮아", "괜찮아"라고 하며 서로 다독이며 말하자, 팀원들을 향해 정확하게 말해줍니다.
지금 우리 안 괜찮은 것이고, 이거 안 괜찮은 것임을 알아야 하고, 괜찮다고 생각하면 안된다는 것을요.
자, 우리 이제 괜찮다고 하지 마요. 안 괜찮아요. 4:0 많이 창피한 스코어거든요. 4:0이면 질 수 있어요. 그런데 적어도 4:1과 4:2, 4:3은 달라요. 우리 4:0으로 지면, 진짜 창피한 거예요.
그리고 <골때리는 그녀들>에서 제일 많이 진 팀인 '아나콘다'란 팀에서 가장 많이 하는 말은 바로 "괜찮아"이죠.
힘겨운 상황에서 벗어나오는 사람들의 생각
변화와 성장을 하는 사람들은 안 괜찮은 것을 안 괜찮은 것으로 직시하는 것을 회피하지 않습니다. 바람과 이미지가 아니라 라 현실 속 진짜 결과물, 진짜 관계에 초점을 맞추기 때문이죠.
힘겨운 상황에서 벗어나오려면 지금 내가 있는 상황이 어떤 것인지 직시해야 하죠. 그런데 '괜찮아'를 습관적으로 쓰면서 문제 인식을 흐려버립니다.
그러면 그렇게 가는 것입니다. 힘들어하고 속상해하면서요.
힘겨운 상황에서 벗어나오는 사람들은 지금 내가 있는 곳이 안 괜찮은 것임을 정확히 인지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상황에 계속 있을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헤어지고 싶다면서 헤어지지 못하고 몇 년의 시간을 보내고 계시는 분들을 만나게 되곤 합니다. 이해하고 노력하고 용서하고 넘어가고 눈 감아주고, 참아주고, 넘기고, 그러면서요. 그냥 좀 다르거나 그냥 좀 불편한 정도라면 '괜찮아'하면서 가는 거죠. 이해하고, 노력하고, .... 등등을 하면서요.
그런데 조금 다르거나 불편한 정도가 아닌, 인격적으로 손상과 장애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렇다는 것을 직시하지 못하는 분들이 있으세요. 만사에 다 직시할 필요는 없는데, 필요할 때는 해야 하는데, 필요할 때조차도 안 하죠.
'괜찮아 믿음교'에 너무 빠지면 위험한 이유
세상 모든 사이비 종교에 빠져 있는 광신도들의 모습은 피폐합니다. 그를 아끼고 살펴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입니다. 자기 자신 조차도 자신에 대해 읽고 살피고 보호해주지를 않고 사이비 교주가 말하는 것을 믿음의 힘으로 불편한 상황과 현실을 잊으려고만 하죠.
우리는 마음이 힘들어질 때 종교를 찾는다고 해요. 나의 힘으로는 나의 힘겨움을 어떻게 할 수 없어서이죠.
광신도까지는 아니여도, '괜찮아 믿음교'에 빠져 있는 분들도 그런 것 같아요. 상황을 직시해서 문제해결을 직접 해온 자기 경험이 별로 없으신 분들, 일어난 일을 파악해서 지금 무엇이 중요하고, 무엇을 개선하고, 무엇에 집중을 하면 되는지 상황 처리 능력이 별로 없으신 분들은 두 손 꼭 잡고, 두 눈 꼭 감고 기도를 하죠. 괜찮아, 괜찮아, 괜찮아.
그런데 그렇게 살아가는 방식을 뺏고 싶지는 않아요. 왜냐하면, 정말로 '괜찮아'라는 믿음을 붙잡고 있는 것이 최선이 되어져 있는 분들도 있으시니까요.
다만 옛날 방청객들의 자동 반사적인 반응처럼, 뭐든 자동 반사적으로 '괜찮아'하면서 믿음으로, 의지로 주어진 상황을 대하는 것은, 지금 상황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 변화되어진 상황들, 도움이 되는 것, 그리고 반대로 해로운 것을 보고 그에 맞는 상황 대응과 대처를 하지 못합니다.
믿음이 현실의 상황에 대해 보는 눈을 앗아가버리는 것이죠. 상황과 현실을 보는 눈, 감지하는 감각을 소실한 사람은 더 붙잡을 수밖에 없어지죠. '괜찮아' 라는 생각을요.
'괜찮아 믿음교'에서 나오려면,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식의 생각에서 나와 본질적으로 <괜찮아 믿음교>에서 나오려면, 내가 현재 살고 있는 현실이 나에게 안정감을 주어야 합니다.
내가 현재 살고 있는 현실이 나에게 안정감을 주려면, 나에게 해로운 것을 좀 버리시거나 벗어나거나 둘 중 하나가 필요하세요. 마음을 가다듬고 들어왔는데, 집 안에 인상이 찌푸러지는 냄새가 나는 50L짜리 쓰레기봉투가 있는 것을 생각해보세요. 그게 괜찮은 건가요? 그런 환경에서 안정감을 가질 수가 있나요?
그 쓰레기봉투를 버리거나 버릴 수가 없다면 그 집에서 벗어나야죠.
내가 왜 내 집에서 나가요? 쓰레기가 안 나가니까요. 그리고 쓰레기를 집 안에 들인 것은 나였었으니까, 그것에 대한 책임이라고 생각하는 수밖에 없죠. 쓰레기를 품고 '괜찮아 믿음교'에 의지해서 사는 것보다 그 집을 벗어나는 것이 훨씬 삶의 질이 높아집니다.
내가 더는 '괜찮아 믿음교'에 의지하지 않아도 되게 나의 현실을 바꾸는 것이 가장 본질적으로 '괜찮아 믿음교'에서 나오는 방법이랍니다. 아무리 결심과 다짐을 해보아도, 그런 막연하고 추상적인 것은 막연하고 추상적으로 사라지죠.
'괜찮아 믿음교'에 빠지면, 퇴행과 회피는 피하지 못하더라고요.퇴행과 회피가 결국 쓰레기와 같이 사는 삶을 살게 만들죠. 퇴행되어져 있지 않고 회피하지 않는 사람들이 과연 쓰레기와 같이 살까요? 그렇지 않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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