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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연남동 심리카페' 이야기

홍대 앞으로 출판사를 이전하게 된 이유

어제 <골 때리는 그녀들> 보셨나요? 거기에 인상적인 장면과 말이 나오더군요. 

 

"이야, 그거 그렇게 연습 많이 했었는데, " 

"결국엔 하나 넣었네."

"이제 나오고 있어."

"그러게."

"그게 일년 넘었는데 이제"

"결국에는 나와."

"한 200번 못해도 한 번은 나와"

 

 

<골 때리는 그녀들>에는 '발라드림'이라는 팀이 있습니다. 거기에 경서와 서기라는 투톱이 있죠. 그리고 이 둘과 어우러져 열심히 뛰는 민서가 있습니다. 

 

 

민서는 축구를 잘한다기보다는 열심히 뛰는 선수였어요. 처음이었던 몇 년 전에는요. 그리고 최근도 눈에 띄는 모습을 보이기는 했지만 잘한다기보다는 열심히 뛰는 모습이었죠. 

 

 

그런데 어제 경기에서 민서는 양 팀을 통틀어 제일 잘 뛴 선수였답니다. 열심히가 아닌, 정말 잘한 선수였답니다. 특히 세트피스에서 민서가 넣은 골은 정말 기가 막힌 골이었죠. 대단했어요. 경서와 서기에게 뒤처지지 않는 실력과 능력을 갖추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골이었죠. 

 

 

민서가 세트피스에서 장거리 슛을 골로 성공하고 난 이후에 동료들이 민서에게 위와 같이 말을 해주었답니다. 특히, 서기가 했던 말이 인상적이었어요.

 

한 200번 못해도 한 번은 나와.

 

 

사진: Unsplash 의 Eunice De Guzman

 


무언가를 14년 간 계속 한다는 것.

 

저는 이 말을 듣고 14년 전에 1인 출판사를 만들고 직접 글을 쓰고 책을 만들고 서점에 납품을 했을 때, 서점의 직원이 들려주었던 이야기가 떠올랐답니다.

 

 

말 그대로 1인 출판사였어요. 직접 광고 계약을 맺고 상황에 따라서는 서점에 광고로 놓을 책을 싣고 가서 건네드리곤 했었죠. 제 외모가 사장님 외모는 아니여서였을까요. 어떤 서점의 직원분들은 저에게 출판사 돌아가서 대표님에게 이렇게 내용 전달해 주세요.라고 말을 건네기도 했었죠. 

 

 

하긴, 뭐 그때 학생이기는 했었죠. 대학원생. 그래서 아무래도 직장인 느낌보다는 학생, 그것도 애매한 느낌의 학생 모습이었죠. 

 

 

그런데 그때 한 서점의 나이가 꽤 있으신 직원분이 저에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주셨어요. 그 중 잊히지 않는 이야기가 있었죠. 왠지 서점에서 10년 넘게 일을 하셨을 것 같은 모습의 분이셨어요. 

 

출판사는요, 계속 책을 내야 해요. 유명하지 않은 작가여도 매력 있는 사람이라면, 유명해지지 않은 책들도 한꺼번에 판권을 사서 출간할 필요도 있죠. 어떤 게 터지게 될지 모르거든요. 그 하나가 터지기 전까지 투자한다는 생각으로 계속 책을 내야 해요. 


하나가 제대로 터지잖아요? 그러면 지금까지 투자했던 비용 한 번에 다 회수할 수 있어요. 그리고 하나가 터지면, 기존에 나왔던 알려지지 않았던 다른 책들도 궁금해서 찾아보게 돼요. 


그런데 우리는 어떤 게 터질지를 몰라요. 그래서 계속 책을 내야 해요. 열 권, 스무 권, 백 권, 될 때까지요. 언제 만나게 될지는 몰라요. 꼭 내 노력에 달려 있는 것도 아니구요.  

 

 

저는 2년 동안 다섯 권의 책을 만들고 종이책 제작과 출간은 멈춰서 이 분이 이야기해주신 '터진다'라고 표현될 정도의 경험을 하지는 못했어요. 책을 쓰고 만들어 본 적이 없었던 제가 혼자 직접 글을 쓰고 인쇄소에 가고 배본사에 주문 넣고 너무 정신없더라고요. 

 

 

그리고 그때 제가 출판사를 만든 것은 판권을 사기 위해서였죠. 14년 전, 대학원을 다닐 때, 'highly sensitive person'이라는 성격의 사람들이 인상적이었어요. 외국에는 관련 책들이 나와 있었는데, 우리나라에는 아직 잘 알려지지 않은 상태였었죠. 출판사들에 출간을 위한 컨택을 했었는데, 결과적으로 잘 안 되었어요. 

 

 

그런데 판권은 개인이 아닌, 출판사가 살 수 있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1인 출판사라는 것이 있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1인 출판사 사업자 등록을 내고 에이전시를 통해 그 책의 판권을 사서 직접 번역을 해서 책을 만들어 출간을 했었죠. 다른 책들을 직접 쓰고 만든 이유가 그 당시 대형 서점 한 곳은 기존에 출간한 책이 세 권 이상 있어야 계약을 맺을 수 있다고 해서 세 권의 책을 만들었던 거였죠. 

 

 

이전에 섬세한 성격에 관해 일러스트와 작업을 해서 그림책을 만들었던 것이 있었거든요. 그런데 그때는 종이책이 아닌, 전자책으로 만든 그림책이었죠. 그것을 종이책으로 만들었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책을 만들어본 적이 없는 사람이 그림책을 만들 생각을 했었네요. 신기하네요. 

 

 

뭘 모르는데, 하고는 싶고, 젊고, 그래서 해볼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나머지 두 권은, 하나는 섬세한 성격에 관한 에세이를 써서 책을 만들고, 마지막 세번 째 책은 그림책에 들어가는 글을 영어로 바꿔서 영어 그림책을 만들었죠.

 

 

그 서점과 계약을 맺기 위해서 요구되는 조건이 출간한 책 세 권이였고, 저는 그 조건을 맞추는 것이 필요했고, 책은 ISBN 번호로 분류가 되고, 새로운 ISBN 번호를 받으면 되는 거였으니까요. 그리고 나름 영어로 된 그림책 수요와 매력도 있을 것 같았고요. 결정적으로 단 기간에 책 세 권을 새로 쓸 수는 없었으니까요

 

unsplash

 

 

 


홍대 앞으로 출판사 이전하게 된 이유,

 

 

그렇게 시작했던 1인 출판사가 이번에 홍대 앞으로 이전을 했죠. 성공한 것이 아니고, 아 뭐, 그렇다고 실패한 것도 아니고요. :) 연남동에 있는 심리카페를 정리하고 폐업을 하고 거기로 등록한 출판사 주소지도 이제 공간이 없어졌으니 출판사도 폐업처리를 하려고 했었죠. 그랬는데 출판사 폐업을 하면 문제가 생기더라고요.

 

 

저는 <네이버 프리미엄 콘텐츠(줄여서 네프콘)>라는 유료구독 글 플랫폼에 3년 째 글을 연재하고 있는데, 출판사 사업자 등록증이 없으면, 통신판매업 신고도 같이 없어지기 때문에 온라인상에 유료로 판매가 진행되는 <네프콘>의 제 채널에 글을 올릴 수가 없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방법을 찾아보고 알아보고 고심한 끝에 '비상주 사무실(virtual office)'이라는 것이 있었어요. 여러 업체들이 있었는데, 대부분은 강남쪽의 주소지를 사용하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강북을 주소지로 하는 곳을 찾다 보니 지금의 홍대 앞에 위치한 곳으로 계약을 맺게 되었습니다. 

 

 

계약을 맺을 때는 홍대 앞인지도 몰랐어요. 며칠 전 주소지를 검색해서 걸어가봤더니 홍대 입구 거의 바로 앞이더라고요. 제가 사는 집이 신촌인지라, 집에서 대로를 따라서 20분 정도 걸어가면 되는 곳에 있더군요. 그래서 가깝지만 사실 안 가보았던 홍대 쪽을 제 생활 공간을 이용하게 되었답니다. 10월까지는 8년 동안 연남동 경의선 숲길이 제 생활공간이었거든요.

 

 

unsplash

 


한 200번 빛을 못 봐도 한 번은 나와, 사람들의 주목을 받는 글이

 

'터지는' 책은 경험해보지 못했지만, '터지는' 글은 경험해 보았습니다. 예전에 다음에 <스토리 펀딩>이라는 글 쓰는 플랫폼이 있었습니다. 펀딩을 받는 형식이었죠. 그때 섬세한 성격과 관련된 글들을 연재하고 펀딩을 받았었는데, 여덟 번째로 써서 올렸던 글이 말 그대로 '터진' 것이었죠. 다음 메인창에 계속 뜨고, 조회수도 조회수이지만, 펀딩 자체가 몰렸었습니다. 

 

 

갑자기 평소와 다르게 조회수랑 펀딩 신청 금액이 차원이 다르게 떠서 당황했었는데, 나중에는 무섭더라고요. 처음 다음 메인에 제 글이 뜨고, 그렇게 계속 있으니까요. 뭘 잘못한 것이 없는데 무언가 그렇게 주목을 받고 노출이 된다는 것에 너무 부담스러웠습니다. 정말 숨고 싶어 지더라고요. 지금은 스토리 펀딩 플랫폼 자체가 다음에서 없어져 그때의 글을 브런치에 올려놓았는데, 그때의 글은 이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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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는 이 글이 왜 그렇게까지 터졌었는지 모르겠네요. 브런치에 올린 같은 글은 그렇지 않은데 말이죠. 서점 직원분이 이야기해 주신 말이 떠오릅니다. 같은 글이어도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것 같아요. 워낙 여러 변수와 요소들이 작용을 하니까요. 

 

 

글의 조회수가 '터진' 경험은 브런치를 하면서 이 글을 통해서 경험해 보게 되었습니다. 조회수가 164,462가 나왔죠. 저의 브런치의 글은 16만 이렇게까지 나오지 않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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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는 그 당시 유료 서비스가 아니었기에 조회수만으로 가늠해 보게 되었다면, <네이버 프리미엄 콘텐츠>는 유료 구독 플랫폼인지라 조회수뿐만이 아니고 유료 구독 신청자수로 이 글이 어떤 파장을 일으켰는지를 함께 가늠해 볼 수가 있습니다.

 

 

아래 글이 네프콘에서 조회수와 유료 구독 신청이 '터졌었던' 글이랍니다. 조회수는 134,186이고, 그 당시 네이버에 메인에 계속 노출이 되었었죠. 네프콘 역시 13만 정도의 조회수는 적어도 저의 다른 글들의 조회수와는 차원이 다르게 많은 조회수랍니다. 유료 구독 신청도 그 당시 가파르게 늘어났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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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200번 못해도 한 번은 나와. 

 

 

10월까지로 연남동에 있는 제 심리카페를 정리하고, 글을 쓰는 것의 비중을 많이 두고 생활을 하려고 하고 있던 찰나에 접하게 된 것이 티스토리의 오블완이었어요. 매번 나름 글을 쓰는데, :) 조회수는 평온한 망망대해에 있는 것 같네요. 하지만 스토리 펀딩을 통해서, 브런치를 통해서, 네이버 프리미엄 콘텐츠를 통해서 경험을 했었죠. 생각지 못한 글이 생각지 못하게 터지게 된다는 것을. 

 

 

그래서 오늘도 오블완 했네요~ 오늘도 블로그 완료! :) "잘했어. 수고했어." 오블완한 저를 셀프 칭찬해 봅니다. :)